I. 서 론
II. 신종의 역사적 고찰
III. 성덕대왕 신종의 음향적 특성
3.1 돌기와 덤쇠의 조율작용
3.2 소리관(음관)의 역할
3.3 움통(명동)의 구조와 작용
3.4 오므라진 종순(종입술)
3.5 비천과 당좌의 맥놀이파 형성작용
IV. 종각 건축구조의 고찰
V. 성덕대왕신종의 종각구조 구성안
VI. 결 론
I. 서 론
국보 제29호에 지정되어 있는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은 한국 최대 크기의 종으로서 서기771년(혜공왕 7년)에 제작 되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종에 대한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오고 있지만 신종을 담고 있어야 할 종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학문적 근거가 없다.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종각과 함께 있어야 할 신종이 단지 하중만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의지해 전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덕대왕 신종의 종각에 대하여 음향적 특성과 역사적 추론을 바탕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음향학적인 측면과 기존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세한 영역까지 유추해 보고 이 두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하여 가장 원형에 가까운 종각을 추론해보고자 한다.
II. 신종의 역사적 고찰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고찰은 문헌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실이나 관련문헌에 간간이 나타나는 언급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사진은 헐버트(H.B.Hulbert)가 1906년에 저술한 Passing of Korea의 내용 중 성덕대왕 신종이 안치된 것으로 여겨지는 종각의 사진이 실려 있다.[1,2] 성덕대왕 신종은 771년 제조된 이후로 여러 장소로 옮겨졌는데 국립경주박물관의 현재위치에 있기까지의 행적을 조사하여 Table 1에 정리하였다. Fig. 1은 신종 종각의 과거와 현재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Fig. 2는 제4차와 제5차 이동시 사진이다.[3]
Table 1. Movement process of the bell.
성덕대왕신종의 제원은 Table 2에 나타난 바와 같으며 신종의 외관과 단면 및 각 부위의 명칭은 Fig. 3에 명기한 바와 같다.
Table 2. Physical data of the bell.
III. 성덕대왕 신종의 음향적 특성
성덕대왕 신종의 음향적 특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음향실험이 실시되었다. 측정은 마이크로폰 30개가 15 cm간격으로 배치된 마이크로폰 어레이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원주 방향의 측정점은 진동의 경우와 동일하게 30° 간격으로 총 12개의 측정점을 선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총 360지점의 음압을 측정하게 된 셈이다(Fig. 4 참조). 또한 가속도계 어레이 시스템(9개의가속도계, 30 cm 간격)을 미리 표시된 위치에 고정시키고, 신종의 타종시에 사용되는 타봉을 이용하여 신종을 울리게 하여 측정하였다.[4]
측정결과 여러 영역대의 주파수가 관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중 64 Hz 근방과 168 Hz 근방의 주파수 성분이 다른 주파수 영역대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종내부의 덤쇠로 인한 형상의 비대칭성과 재료의 불균일성으로 인하여 45º 방향으로 형성되는 기본진동수와 배음으로 2개의 진동모드가 존재하는 것이다(Figs. 5와 6 참조).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성덕대왕신종의 음향적 특성을 조사한 결과, 신종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음향이 만들어진 원인을 다음의 5가지의 사실로 정리하였다.
3.1 돌기와 덤쇠의 조율작용
상원사 동종은 36개의 돌기가 있어 고주파음을 머금게 하여 소리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몇 개를 파손하거나 갈아내면서 주조후의 종소리를 조절한다. 그래서 상원사 종소리는 맑은 소리가 난다고 평한다.[5]
그러나 신종 돌기는 연꽃으로 대치되면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종의 안쪽에 덤쇠를 붙이고 주조 후에 일부를 제거해 가면서 조율에 임한 것으로 판단된다. 덤쇠는 종의 안쪽에 덧붙인 쇳물인데 의도적으로 덤쇠가 설치된 것은 종의 주조 이후에 소리의 튜닝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 덤쇠로 인하여 비대칭의 음파가 발생되었으며, 2개의 고유진동음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Fig. 7 참조).
3.2 소리관(음관)의 역할
음관은 입구가 82 mm, 출구가 148 mm, 길이가 770 mm로 대나무형태의 놋쇠 속에 깔대기형 공기기둥이 박혀 있는 모습인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Fig. 8 참조).
신종에만 있는 음관은 가격 시에 나타나는 공기의 압력을 신속히 빼내는 압력 밥솥의 조절 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음관은 초기에 공중으로 음파가 지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며, 적은 양이지만 특히 고주파의 음을 초기에 배출하는데 이는 명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위로는 지극히 높은 하늘까지 이른다.”는 내용과 아주 근접한 구조이다.[6]
Fig. 9는 음관을 열었을 떄와 닫았을 때 음관의 내부에서 소리의 임피던스를 측정한 결과이다. 닫힌 상태와 열린 상태에서 음관을 통과하는 소리의 주파수특성을 살펴보면 닫혔을 때는 약간의 저역통과성 특성을 가지고 열렸을 때는 전역통과특성을 시현한다. 측정된 음압을 입자속도로 나누면 특성임피던스가 얻어지는데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완만한 주파수의 선택성을 가진다.[7]
즉, 음관을 열고 막음에 따른 소리의 일부가 다른 양태로 뿜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덕대왕 신종은 음관을 설치함으로서 종의 주요 주파수대역인 저음역의 에너지를 제외한 중고 주파수대역의 소리에너지를 음관을 통하여 배출하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8]
3.3 움통(명동)의 구조와 작용
움통은 한국종만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음향적인 요소인데, 메김자리(당좌)를 정점으로 상하 대칭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기타의 움통처럼 공명을 형성하는 작용을 한다. 다른 주파수의 소리는 서로 간섭해서 사라지고, 저주파수 대역인 64 Hz만을 남기는 작용이다. 종교적으로 종의 소리를 지상과 공중은 물론 지하에도 소리가 전달되게 하려면 주파수를 낮추고 위에서 강하게 눌러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주파수를 낮추려면 몸통이 커야하고 자신의 무게로 눌러주려면 체중이 불어야 한다. 신종이 큰 이유는 공연한 허영심이 아니라 이러한 공학적 당위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된다(Fig. 10 참조).
Fig. 11은 움통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 각각 소리의 주파수별 음압과 지속시간을 측정한 결과이다. 움통이 존재할때에 신종의 고유진동수인 168 Hz의 소리가 크게 진동하며 오래도록 방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움통의 고고학적 유물구조는 제 1형으로는 선림원 쇠북의 쇠동이 구조이다. 잘록한 모습은 기주공명의 원리로 볼 때 4/3파장 진동 모드가 된다.
제 2형은 황룡사 종루의 웅덩이 구조이다. 큰 쇠북의 움통 구조의 크기를 어떻게 계산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으며 역으로 움통의 크기는 황룡사 큰 쇠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떤 구조인지 고고학적 자료는 매우 부족하다.
일반적 구조로 제 3형은 일반적 웅덩이 구조이다. 구 박물관이나 현재의 웅덩이처럼 구조를 가지나 물리적 구조가 적절치는 않다.
제 4형은 옹기를 묻은 이중돔 구조(원광식)이다. 벽을 튼튼히 쌓아올려 움집을 만들고 그 곳에 항아리를 묻어 두면 그 항아리가 공진해서 진동음이 오래 지속되었다.[9]
3.4 오므라진 종순(종입술)
종의 아래부위의 종순의 지름이 중간부위의 지름보다 작은 형태는 오직 한국종 에만 있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오므라진 주둥이와 두툼한 입술은 안에서 회돌이 치는 공기를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머물게 하여 소리끌림(여운)을 보다 길게 오래토록 유지 하는 구조이다. 이는 놋밥그릇의 입구가 오므러 들어서 밥이 식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진동하는 공기의 음에너지를 더욱 오래도록 종내부에 유지하게 하는 구조이다(Fig. 12 참조).[9]
3.5 비천과 당좌의 맥놀이파 형성작용
신종의 당좌와 비천상은 서로 90°의 각도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종의 두께가 방향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신종의 당좌를 가격할 때 진동의 방향이 쌍대성을 이루며 진행되게 되는데 Fig. 13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가격시에는 당좌와 비천상의 상하대칭을 이루고, 반등시에는 좌우대칭을 이루게 된다.[10]
신종의 음향적 특징은 대칭이면서 비대칭으로 일탈하는 진동모드가 발생하면서 맥놀이파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맥놀이파는 가장 작은 에너지로 가장 멀리 메시지를 보내는 정보통신 기법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례는 민속이나 우리의 문화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인데 예컨대 석가탑과 다보탑은 좌우대칭이면서 모양이 다르고, 쌀됫박을 밀어 평말로 할 때 조금 남겨두는 덤의 멋과 일맥상통하는 음향공학적인 고려이다.[11]
IV. 종각 건축구조의 고찰
종각은 외형과 내부구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소리의 울림에 대한 고려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전체 구조에서부터 재료에 이르기까지 소리의 울림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쇠북과 관련한 건축물의 외형적 모습은 종각과 종루의 두 종류가 있다. 종각은 단층구조, 종루는 2층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목조로 된 건축물이다. Table 3은 한국종과, 일본, 중국 및 서양종의 외관과 형태, 구조 및 주용도 등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다.
Table 3. Comparison of the bells of different countries.
서양종은 높은 종탑에 매달아 두고 있으며, 중국종은 광장 중앙 높은 곳에 메달아 둔다. 서양종과 중국종 모두 다 종교적 목적보다는 알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종루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움통은 없다.
그러나 47톤의 중국 영락대종이나 20톤의 남경대종의 경우 외형은 종루 이면서 내부는 종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종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움통구조가 없기 때문에 지면으로부터 1~2미터쯤 높이에 매달고 있다(Fig. 14 참조).
이에 비해 우리나라 사찰 쇠북은 알림보다는 종교적 목적으로 주로 사용해 왔으며 특히 지중으로도 소리를 전파하기 때문에 지표면 가까이에 쇠북을 매달았으며 이런 이유로 종각은 움통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사찰종이 아닌 보신각종은 2층 종루에 안치 되어 있으며 지하 움통구조가 없다.
음향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성덕대왕 신종의 주파수 특성상 고유진동수가 64 Hz대와 168 Hz에 분포되어 있음으로 이 주파수대의 흡음율이 높은 판재보다는 음의 전파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기둥과 보와 같은 각재 및 선재로 종각의 구조가 이루어 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단, 성덕대왕 신종의 재료인 청동의 부식과 외부환경에 의한 피로를 경감시키고 우수나 바람 특히 습도가 많은 해풍의 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상방과 중방사이의 공간을 판재로 마감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이것은 성덕대왕 신종과 같은 시대에 일본 경도에 지어진 동대사 종각의 디자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Fig. 15 참조).
종각의 외형에 있어서 신종의 건축물이 종루인지 종각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종보다 일찍 만들어진 황룡사 절터 유적에서는 쇠북에 관한 유구가 남아 있고 2중 회랑으로 된 주춧돌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외형상 종루가 적합한 구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중 회랑과 움통이 존재한다면 종루나 종각이 아닌 제 3의 곧 움통이 있는 종정의 형태를 취했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평면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홀수칸으로 된 정사각형의 모양이나, 엇칸구조를 가진 직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중 황룡사의 종루터에서 나타난 주초석의 수와 위치를 보면 바깥에 회랑을 둔 정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Fig. 16 참조).
지붕의 형태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 초기에 지어진 종루나 종각의 유물과 문헌에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팔작지붕의 형태가 원형에 가장 근접하리라 생각된다.
Table 4는 앞서 분석한 한국, 일본, 중국 및 서양의 종루나 종각의 형태와 구조를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볼 때, 성덕대왕 신종을 안치한 종각의 모습은 경주 황룡사와 일본 교토의 동대사의 건축안을 기본으로 하여 종각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Table 4. Comparison of the bell pavilion of different countries.
V. 성덕대왕신종의 종각구조 구성안
성덕대왕 신종을 위한 종각 복원을 위하여 기본적으로 4가지의 대안을 고려하였다. 즉, 경주 황룡사의 종루터를 기본으로 재구성한 안과 일본 경도의 동대사를 기본으로 재구성한 안, 부석사 조사당을 기본으로 재구성한 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2칸 × 2칸의 구성안을 고려 할 수 있다. Fig. 17은 성덕대왕신종의 종각으로 구성한 초기의 3안과 4안을 각각 보여주고 있다.
종각을 구성하기 위하여 고려한 각 부재와 구조 및 형태에 대한 고려사항은 Table 5에 나타난 바와 같다. Table 5는 성덕대왕 신종의 종각을 재구성 하는데 있어서 현재 시점에서 정해야 할 점들을 정리한 것이다.[12]
Table 5. Consideration of the bell pavilion restoration.
Fig.18은 이상의 역사적, 음향적 고찰을 통한 성덕대왕 신종의 종각을 구성하여 제시한 안의 하나를 3-D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재현한 모습이다.
Table 5에서 언급한 고려사항 외에도 종각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외형과 소리울림적 측면을 비교할 때 불국사나 석불사 등 통일신라시대의 건축물에서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소리울림이 우선되어 고려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내부 천장 부문은 신종에서 나오는 공중음파와 잘 조화 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버팀 기둥과 회랑구조에 있어서 황룡사의 경우처럼 회랑구조를 한다면 2중 버팀 기둥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4각형이나 8각형을 고려할 수 있지만 신종의 8릉형 모양과 어울림을 좋게 하기 위하여 8각형이 어울린다고 보겠다. 버팀기둥 사이의 차단 구조는 온도변화와 부식가스의 차단, 타종시의 외부에서도 음파가 방사되는 두 가지의 요소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또 다른 기회에 종을 가격할 경우 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부가격 장치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내부가격 장치는 일정이상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자동조절 기능이 부여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의 고리에 자동 감속장치를 부착하여 과도한 가격을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12]
가로걸침 들보는 20여 톤이나 되는 거대한 주조물을 걸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 길이가 짧고 굵게 해야 한다. 석불사형의 돔위에 가로들보를 걸치는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돔의 크기는 석불사 본존불과 천장 돔의 비율이 적당할 것이다. 또한 5세기말 축조된 고구려 쌍영총 천정양식에서 보듯이 “평형 3각 고임식”으로 쌓는 방법도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평형 3각 고임이란 4각형을 엇갈리게 하여 축소해서 올라가는 구조이다. 최후에는 짧은 가로들보를 걸치고 고리에 쇠북을 매단다.[12]
종각의 재료는 소리울림의 관점에서 볼 때 목재가 타당할 것이다. 움통과 반사통의 크기는 반사통 안에 움통이 있었는지, 다만 움통만 있었는지 확실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또한 움통은 대소 8자형, 대칭 8자형, 단일형 등 3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어떠한 형태든 지하에 존재할 것이므로 외형 구조와는 직접 관계는 없다. 움통과 달리 반사통의 구조는 천정돔과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VI. 결 론
성덕대왕 신종의 종각을 복원함에 있어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실정에서 음향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복원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성덕대왕신종의 음향적 특성을 고찰하고, 역사적으로 문헌에 나타난 신종의 자료와 한국종과 외국종의 특징에서 비롯된 종각의 특징을 분석하여 성덕대왕신종에 맞는 종각의 모형을 제안하였다.
기존의 종각은 먼저 종 자체의 하중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구조였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형태로서, 소리가 잘 퍼져 나가게끔 고안된 구조였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외부의 요소로부터 종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겸비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귀중한 보물이자,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종인 성덕대완신종의 가치를 제고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를 보존하기 위하여 성덕대왕 신종의 원형적인 특성을 잘 반영한 종각에 신종을 안치하여야 온전한 문화재라 칭함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음향적 특성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한 실험도 수차례 시행되었다. 신종의 음향적인 특성에 맞는 종각의 복원도 따라서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학문의 각 분야에서 본 연구에서 제기한 여러 부문에서의 문제점을 더욱 면밀히 조사하여 접근 한다면 우리 후손들에게만 물려줄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관심을 갖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